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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Apr 13. 2020

<Years and Years>디스토피아? 남탓 하지마

기술 변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다보니, 사회도 미친 속도로 변한다.. 따라서 미래 예측은 쉽지 않고, 차라리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식으로 얘기하곤 했습니다. 5, 10년을 어떻게 내다보겠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2019년에 15년을 뛰어넘어 2034년까지 가까운 미래를 보여줍니다. 깊은 우울과 절망이 넘치는 디스토피아. 심지어 몹시 설득력 있습니다. 15년을 에피소드 6, 6시간에 압축했는데 엄청난 속도감과 현실감 보여줘요.


이하 스포일러 디테일하진 않아도 큰 그림 얘기라는 거, 감안하시길




네 남매를 중심으로 한 나름 번듯한 Lyons 일가가 주인공입니다. 재무 전문가 부부인 스티븐, 급진적 사회운동가인 이디스, 안정적 지방의회 공무원 대니얼, 씩씩한 워킹맘 로지. 그리고 이들의 할머니 뮤리엘. 안타깝지만 이들의 일상은 6개 에피소드 내내 점점 더 나빠집니다. 사회가  나빠지고, 전세계가 나빠지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또다른 주인공은 포퓰리스트 정치인 비비안 룩(엠마 톰슨!).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막말로 화제를 모으기 시작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 끝내 총리가 됩니다. 그의 공약이 얼마나 어이 없는지 놀라면서도 거기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게 되더군요. 영국만 그랬겠어요? 다른 나라 정세도 좋지 않습니다. '극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분쟁중인 중국 영토에 핵을 쏩니다. 푸틴은 러시아의 종신 대통령이 되죠. 실제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 투표는 현재 코로나 때문에 잠시 보류된 상태. 쏘 리얼하죠? 어느 나라에선 혁명이 벌어지고, 어느 나라에선 계엄령, 어느 나라는 브렉시트의 뒤를 잇습니다. 세계는 갈등과 혼란에 빠지고,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해에 따라 분노와 혐오를 부추깁니다. 할머니 눈에는 손자가 중국계란게 먼저 눈에 띄고, 어렵게 정착하려던 난민은 추방됩니다. 공영방송 BBC는 정부 비판하다 문을 닫게 되고, 전염병, 질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소오름)

아무말대잔치의 끝판왕 비비안 룩은 자기 진영이 운영하는 채널(유튜브?)에만 출연합니다. 아예 기존 미디어엔 등장하지도 않아요. 자기의 막말에 박수치고 확대, 재생산하는 채널을 기막히게 활용합니다. 지지자들 눈에는 어느새 비비안만 보이는거죠.


내 삶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드라마. 허투루 쓰인 장면이 없을 정도로 정치가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생생합니다. 손쉬운 차별은 어느새 내가 당하는 부당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당연했던 사회 인프라 마저 흔들립니다. 더불어 일상을 바꾸는 중요한 변수는 기술입니다. 이 드라마는 SF로서도 매끄러운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일단 AI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가 없어집니다. 잘나가던 스티븐은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긱 잡'을 택합니다. 택배 노동을 비롯해 'N잡러'가 됩니다. 스티븐의 딸 베서니는 '트랜스'를 고민하는 10대. 부모는 딸이 아들이 되려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휴먼'. 뇌? 기억? 영혼까진 아니겠죠? 무튼 정신을 클라우드로 옮기고 육체는 소멸시키는 '트랜스 휴먼'에 꽂힌 베서니. 베서니가 겪게되는 일들도 엄청나게 흥미롭습니다. 그 시행착오마저 몹시 현실적입니다. 기술의 미래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를텐데, 너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아요. 아이들이 쓰는 버츄얼 마스크, 로봇 섹스 등 에피소드도 썩 그럴싸 합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은 매우 매우 가족적입니다. 가족의 해체가 아니라 완전한 연결. 네트워크로 이어진 가족의 새로운 관계 맺기도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장애인인데, 극이 한참 진행되는동안 몰랐어요.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 일상에 문제가 없고, 세상의 시선도 그래요.


이 작품은 정치 드라마이자, SF인 동시에 지지고 볶는 멜로 혹은 가족 드라마이기도 해요.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죠. 즉 세상이 망해도 사랑과 배신이 인간사 가장 중요한 일. 미국이 중국에 핵을 쏘고 영국도 전국에 싸이렌을 울리자, 누군가는 결단을 내립니다. 세상이 망하는 순간, 누구와 함께 있을거냐. 사랑 외에 뭐가 중요하겠어요. 저는 이들의 사랑을 열렬히 응원했어요.. 함께 있는 것 외에는 바랄게 없던 커플. 라이언즈 가족 중에 저의 최애캐인 그와 애인이 겪는 일들은 낯설지도, 놀랍지도 않아요. 지금도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일이죠... 흔해서 둔감해졌으나, 이럴 일인가 싶은 상황들. 애틋하고 가슴 철렁하고 속앓이를 함께 하게 되네요... 또 '배신'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것은 캐릭터의 힘. 인간이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멋진지 볼 수 있습니다. 마침 그녀는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을 홀리더군요. 그녀의 딸도 진짜 매력적.

와중에 모든걸 '남 탓'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정신 멀쩡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원래 그런 법이죠.


<닥터후>를 부활시켰다는 러셀 T.데이비스라는 분이 이 작품의 작가인데요, 에피소드 6편에서 할머니 뮤리엘의 입을 빌려,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립니다. 정부가 저리 된 것도, 금융이 망가지고, 사회가 불안해진거, 다 우리 탓이라고 합니다. 맨날 정치인 탓하고, 날씨 탓하고 해봐야 결국 우리 탓이라고요. 힘 없는 우리가 어쩌겠냐는 식으로 넘어가는게 더 편하기는 했을거라고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사람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둔 일들. 결국 우리가 만든 세상이라고요.


평범한 어떤 이들에게 정치는 지루했어요. 그러나 민주주의는 잠깐의 이상이었을까요. 금새 망가지는 상황을 만나면 정치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집니다.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모두 정치적 변화에서 비롯됩니다. 드라마에서 핵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가까운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만드는 것은 정치였어요. 경제가 망가지고 은행들이 파산하고, 기후변화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것도 결국 정치인들이 만든 미래. 그래서 결국 정치. 투표를 잘해야 한다는 공포를 남겨주는 드라마입니다.


#힘의역전 을 주제로 작년 말 열렸던 #메디치포럼 에서 <수축사회> 저자 홍성국님의 발표 중 매우 인상적인 그래프 하나를 빌려와봅니다. 프리덤하우스 분석이죠. 전세계 포퓰리즘 국가가 엄청 늘었어요. GDP 비중으로 따지면 금융위기 무렵 4%에서 이제는 41%.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83%에서 32%로 줄었죠. 포퓰리즘 국가로 미국, 브라질, 이탈리아, 인도가 포함되고요. 권위주의 정부로는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됩니다. 추세선을 보자면, 포퓰리즘 국가가 늘어나는게 현실입니다. 무섭지 않아요? 일단 이 드라마 보고 다시 얘기해요. 정말 강추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6시간 순삭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코로나로 바뀌는 세상을 살고 있어요. 이른바 선진국이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걸 이제 다들 알게 됐죠. 세상에 대한 신뢰가 조금 흔들리면서 위기 의식과 고민이 부쩍 늘어난 시대입니다. 각국의 피해 규모가 크게 엇갈리는 것은 결국 정부의 능력,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를 배제할 수 없어요. 이래저래 글로벌 재난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남 탓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절절해집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끝내 각자 용기를 내기도 하고,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찌되냐고요? 보세요.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친구 H, J와 셋이서 감상. H는 우리 때문에 두 번 봤는데, 저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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